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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철민 - 한 해 정리와 2019년 블록체인/크립토 시장 전망

출처: https://charlespyo.com/2018/12/27/%ED%95%9C-%ED%95%B4-%EC%A0%95%EB%A6%AC%EC%99%80-2019%EB%85%84-%EB%B8%94%EB%A1%9D%EC%B2%B4%EC%9D%B8-%ED%81%AC%EB%A6%BD%ED%86%A0-%EC%8B%9C%EC%9E%A5-%EC%A0%84%EB%A7%9D/

 


글이라는 것은 자꾸 쓰지 않으면 쓰는 방법을 잊는듯 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씁니다. 올 한 해는 어떻게 지난지 모를 한 해였습니다. 연말엔 의례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표현을 쓰지만 올해는 정말 그랬습니다. 크립토 업계에 있던 누구나 그랬을 겁니다.

올해 좋았던 일을 꼽자면 체인파트너스 동료들을 만난 일입니다. 이건 무엇보다 중요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헤어진 사람도 있지만 다들 기억하고 있습니다. 안좋게 헤어진 사람도 있지만 분명히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연락을 해야만 했는데 너무 바빠 못한 사람, 답장을 못한 사람, 대화하다가 끊긴 사람도 있습니다.

올 한해 제게 여러모로 서운했던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한동안 하루 서너시간 자면서 일만 했습니다. 운동은 상상도 못하고 제대로 된 점심 식사는 2주에 한 번 정도 했습니다. 그렇게 살았으니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부족해 올해 여러모로 많은 실망도 끼쳤습니다. 몇가지 생각해 보면 이오스 타워가 생각납니다. EOS BP로 출마해 국내외 후보들과 과도한 선거전을 벌이며 BP가 되면 이오스 노드를 유치한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특정 국가 후보들의 담합으로 국내 모든 후보가 BP에서 밀렸고, 전체 블록체인 시장의 거품이 빠지며 EOS 가격도 크게 하락했습니다. 코인 가격이 떨어지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블록체인의 성격상 생태계 지속성이 위협 받는 것이 이 세계이므로, 우리가 이오스 타워를 올리는 꿈은 지금으로서는 다소 멀어졌습니다.

이 점 많은 분들께 실망을 끼치게 되어 송구합니다. 하지만 이오스 타워를 제외한 모든 공약은 약속대로 착실히 이행해 가고 있습니다. EOSscan을 대체하는 EOS 이용 종합 포털인 EOShub가 출시되었고, 예고했던 NOVA 월렛이 출시되어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탈중앙 거래소인 EOSDAQ이 출시되었고, Tokenext도 나왔습니다.

다소 늦었지만 DAYBIT이 EOS 기축 거래를 시작하였고,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EOS 교육 프로그램인 We.D, 글로벌 DApp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인 DIA,  EOSYS 블로그를 통한 EOS 교육 자료 제작도 계속 했습니다. 한때 50위권 밑으로 떨어졌던 BP 순위도 꾸준히 올라 현재 30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EOS 생태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자원 임대 도구인 Chintai는 BP들의 투표로 전세계에서 가장 공정한 5명의 관리인을 선출했습니다. 여기에 EOSYS가 선출되어, Chintai 운영과 Chaintai에 모인 EOS 토큰을 활용한 대리 투표권을 행사하는 대리인 역할을 시작했습니다.

단지 토큰 많은 사람이 좌우하는 EOS BP 선거가 아니라 전세계의 인정받는 BP들이 모여 그간의 노력과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선출한 관리인이기에 더욱 값진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블록체인계의 경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이렇게 큰 블록체인의 코어 그룹이 된 국내 회사는 없었습니다.

EOSYS는 EOS를 만든 Block.one의 부사장이었던 Thomas Cox가 좌장으로 있는 EOS Work Proposal Working Group에도 참여해 매년 새로 발행되는 토큰의 운영 방침도 함께 논의하고 있습니다.

여러 의미로 한국의 EOSYS는 EOS 블록체인 운영의 핵심에 들어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모두 지난 한 해 여러분께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이오스 타워는 현재로서는 너무 송구합니다마는 우리는 약속을 지키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여건이 되는 날이 오면, 다시 꿈꾸겠습니다.

EOS는 완벽한 마지막 블록체인은 아니지만 충분히 훌륭한 블록체인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빠른 블록체인이고 나머지 모든 블록체인 DApp이 일으키는 Transaction을 합한 것보다 많은 Transaction이 EOS 위에서 동작하고 있습니다.

즉 당분간 적수가 없는 블록체인이고 겨우 올해 6월에 나온만큼 앞으로 더욱 발전해 갈 것입니다. EOSYS는 그런 블록체인의 인사이더고, EOS가 커지는 혜택을 EOSYS가 그대로 받을 것입니다.

EOS는 애초에 오픈소스를 이용한 변형(Hard fork)을 권장한 체인입니다. 그러나 아직 변형이 많이 안나왔습니다. 우리는 애초부터 EOS를 이용해 기업이 쓰기 편하게 변형한 블록체인을 만들겠다고 예고해 왔습니다. 이름은 POLARIS입니다. 올 3월부터 꾸준히 조금씩 발전을 시켜왔고 최근 Position Paper 2.1 버전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어떤 블록체인을 구상하고 있는지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EOS 블록체인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기업이 쓰기 편한 부분을 강화한 일종의 EOS 산업용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하나씩 베일을 벗고 좋은 파트너들과 진짜 블록체인이 필요한 곳에 사용해 갈 것입니다.

요즘은 블록체인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분야에서도 블록체인을 도입했다고 연일 보도자료를 냅니다. 기왕이면 우리는 아주 적게 쓰여도 POLARIS가 블록체인이 꼭 필요한 곳에만 쓰이기를 바랍니다. 블록체인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것은, 불도저 몰고 레이싱 경주를 나가는 것만큼이나 비용비효율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DAYBIT 거래소는 올해 두 차례의 연기 끝에 10월에 출시되었습니다. 몇 가지 실수가 있었습니다. 먼저 모 해외 거래소와의 제휴건이 있습니다.

해당 제휴는 실제 추진중이었으나 저의 부주의로 논의 과정 중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이후 딜이 지지부진해 깨졌고 기사를 보고 묻는 사람이 많아지자 해당 거래소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데이빗과의 제휴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기꾼에게 엄정 대응하겠다”는 다소 강한 표현을 써서 마치 논의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해당 기사가 나간데 대해 직접 만나서도 사과했고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이었는데 갑자기 그런 트윗을 올린건 여전히 깊이 유감스러운 행동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연기가 두 차례나 된 것은 모두 제 불찰이었습니다. 변명하자면 중간에 원화 수신 문제가 있었고 리워드 기능을 추가하게 되면서 각각 한달과 두달 일정의 설계 및 개발 변경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온전히 저의 잘못입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세번째는 오픈 이후의 일입니다. 리워드 프로그램을 위해 설계된 데이 토큰 가격이 상장 직후 크게 올랐다 떨어진 일입니다. 이로 인해 여러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중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이 토큰 가격이 오르는 것은 저희에게도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가격을 우리 또는 우리와 연결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띄우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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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4일 현재 제 데이 토큰 보유량. 평단 $0.122에 201,475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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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매도 거래 내역입니다. 데이 토큰은 단 한 번도 판 적이 없습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의 의견을 반영해 거래소가 가져가는 수수료의 고정 비율을 낮췄고, 그간의 수수료 수입을 이용해 장내 고지 후 꾸준히 데이 토큰을 바이백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데이 토큰이 낮은 가격대를 횡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부러 펌프 앤 덤프를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제 두달 넘게 운영하며 데이 토큰의 투자자 보호를 위해 장기적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데이빗 거래소가 본연의 건강한 거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개선은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 왔습니다.

그런 배움을 앞으로 서비스에 하나씩 적용해 갈 것입니다. 우리가 오픈 후 순차적으로 EOS를 상장하고 기축 마켓을 도입해온 것처럼, 이같은 배움을 서비스에 적용하는 기간도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은 전혀 없는 데이 토큰의 기능도 하나씩 붙여갈 것입니다.

체인파트너스와 그 인접 생태계 전반에 걸쳐 데이 토큰은 단일 화폐이자 상품권처럼 실제 서비스를 구입하고 이용하는 용도로 널리 통용되도록 차근히 만들어 갈 것입니다.

얼마전 주주 중 한 사람으로부터 ‘앞으로 시장에 아무 약속도 하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습니다. 그간 우리가 너무 많은 약속을 해왔기 때문에 제 때 출시가 안되면 사람들이 실망하게 된다고, 그냥 시장에 기대를 주지 말고 때 되면 내라는 말이었습니다. 약속한 대부분의 일을 실제로 하고도 욕먹은 걸 생각하면 많이 공감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약속을 거의 안합니다. 여느 언론 인터뷰에서도 주의하고 있고 제 약속의 산실이었던 이 블로그도 두 달 가량 아무 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기대를 만들어서는 안되겠지만 최소한 이 사람이, 이 회사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때때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특히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처럼 계획과 비전을 빼면 아직 실체가 없는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씁니다. 하지만 글의 끝까지, 또 앞으로의 글과 인터뷰에서도 큰 방향은 제시하되 구체적인 내용과 일정은 약속하지 않으려 합니다.

데이 토큰 가격이 떨어지면서 저는 제가 최대한 정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 온 것과는 무관하게 살면서 가장 많은 욕을 들어먹었습니다. 올 여름께 국제적인 다단계 조직이 500억원 어치에 해당하는 이더를 줄테니 데이 토큰을 통째로 팔라고 접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제안을 뿌리치고 새벽까지 일하다 집 앞의 24시간 분식집에 들러 만두 라면을 먹었습니다. 스스로 깨끗하게 살고 있다는 뿌듯함에 그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나 데이 토큰 가격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그 사진을 캡처해 저를 ‘표만두’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500억원 거절했다고 스스로 우쭐해 놓고 정작 상장 후 가격 방어 하나 못해주다니 한심해 보였을 겁니다. 당시 제가 올린 글을 보고 “표철민은 맨날 똑같다. ‘나는 이렇게 잘하려 노력하는데 당신들은 왜 그리 몰라주느냐’고 우는 소리 한다”는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자기 연민과 자기애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 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토큰 가격의 향방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데이빗의 미래를 믿기 때문에 데이 토큰을 계속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근 특정 거래소가 마켓 메이킹 봇을 일정기간 사내에서 돌려 검찰에 기소되었다는 소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데이빗은 그런 일은 없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곳입니다.

나중에 누군가 들어와 자료를 다 열어 보아도 우리 스스로 자신있고 떳떳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따금 실수하는게 있을지 몰라도 거래소 운영에 있어서는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하기 위해 정말 애쓰고 있습니다.

내년도 전망

내년도 전망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블록체인을 다루는 미디어가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전통 미디어도 블록체인을 다루고 블록체인만 다루는 신생 매체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새해를 맞아 몇몇 언론사에서 내년 시장 전망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연말이라 몇군데 인터뷰도 했는데요. 활자화되는 과정에서 제 발언의 취지가 더러 생략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러 오해가 생길거 같아 부득이 직접 써서 본래 뜻을 전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다루는 주제가 많아 글이 길지만 이 글을 읽으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해되실 겁니다. 누구를 서운하게 하려고 제 시간 들여 이렇게 글 쓰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배운 것들, 제가 블록체인 시장의 여러 정보가 모이는 곳에서 겪고 느끼게 된 것들을 나누기 위함입니다.

최대한 고민하고 나누어서 한국의 블록체인 업계가 각기 따로 시행착오하는 시간을 줄이고, 힘을 모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운영의 주체가 있는 블록체인의 원년

내년에는 카카오 계열의 Klaytn과 라인 계열의 LINK, 그리고 두나무 계열의 Luniverse, 블로코 계열의 Aergo 등 운영의 주체가 있는 블록체인들이 속속 나옵니다. 티몬과 배달의민족 등 여러 서비스에서 사용한다고 예고한 Stable coin인 Terra도 나옵니다. 이더리움은 제휴팀이 없지만 이런 프로젝트들은 제휴팀이 있어 파트너를 설득해 참여시킬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직접 DApp을 개발하거나 파트너사에 일정량의 토큰이나 현금 등 보상을 지불하고 DApp 개발을 시키기 때문에 순전히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이더리움이나 EOS 생태계보다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탈중앙화 블록체인 진영보다 중앙화 블록체인 진영은 이미 기존 서비스에서 확보하고 있는 유저도 많고 사용자 경험에 대한 이해도 훨씬 높습니다. 따라서 카카오나 Facebook, Baidu가 만드는 블록체인이나 DApp이 이더리움이나 EOS 기반 DApp보다 쓰기 쉬울 가능성은 거의 확실합니다.

프로토콜뿐 아니라 지갑 같은 유틸리티도 기존 인터넷 기업들이 만드는 것은 훨씬 쉬울 겁니다. 탈중앙 철학에 다소 위배되더라도 지갑 앞 단을 중앙화하면 핸드폰 번호나 Facebook, 카카오 계정으로 로그인 시킬 수 있습니다. 알아 볼 수 없는 난수로 로그인해야 할 일은 중앙화된 블록체인에서는 거의 사라질 겁니다.

또한 기존 사용자 기반이 없는 이더리움이나 EOS에 비해 자신들이 운영하던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를 유입시키기 훨씬 유리합니다. 따라서 단시간 내에 사용자수는 운영의 주체가 있는 블록체인이 그렇지 않은 블록체인을 압도할 겁니다.

올해까지는 주로 운영의 주체가 없거나 운영의 주체도 그다지 유저를 부을 힘이 없는 블록체인들만 있었다면 내년은 다른 양상이 펼쳐질 겁니다. ‘이더리움 대 EOS’가 아니라 ‘탈중앙 블록체인 대 중앙화 블록체인’의 경쟁 구도를 띄게될 겁니다.

아마 중앙화 블록체인은 지역색을 강하게 띌 것으로 전망됩니다. 카카오 Klaytn은 한국에서, 라인의 LINK는 주로 일본과 대만 등 LINE 메신저가 강한 지역에서, 그리고 Baidu나 Alibaba가 만든다는 블록체인은 당연히 중국에서 사용자가 가장 많을 겁니다.

Facebook도 블록체인팀이 200명이 넘는다고 하니, 내년에는 속속 준비중인 것들을 내놓으리라 생각합니다. Whatsapp에 Stable coin을 개발해 넣어 인도의 송금 시장을 노린다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200명이 Stable coin 하나만 만들고 있을리 없기 때문에 Facebook과 Instagram, 그리고 Whatsapp 메신저를 가진 Facebook 그룹은 블록체인 대중화에 가장 큰 다국적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은 회사입니다.

Google과 Apple은 아직 조용히 있지만 블록체인 세상이 와도 사용자 접점은 모바일과 데스크탑에서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 양대 모바일 플랫폼을 쥔 두 회사는 급할게 없습니다. 언젠가 Google이 모바일 Chrome 브라우저에 암호화폐 지갑 플러그인을 내장하면(당연히 그렇게 될 겁니다) Google은 단숨에 세계 1위 암호화폐 지갑 서비스 회사가 됩니다.

Apple 역시 이미 있는 iWallet에 암호화폐 지갑만 추가하면 전세계 수억명의 사용자를 금방 흡수할 수 있습니다. 유저를 잔뜩 쥐고 있는 중앙화된 주체들은 사실 블록체인 혁명에 그리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탈중앙 진영이 만든건 오픈소스로 모두 공짜로 가져다 쓸 수 있지만 탈중앙 진영은 중앙화 진영이 가진 사용자가 없습니다.

물론 탈중앙 진영이 영원히 불리하기만 한건 아닙니다. 결국 블록체인은 인터넷이 제공하지 못하는 가치를 제공하며 사용자를 얻을 겁니다. 그것은 주로 기술적인 것보다는 정치적인 탄압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인터넷에 있고 싶지만 있을 수 없는 서비스들이 블록체인으로 와서 사용자를 얻을 겁니다. 불법 영화 스트리밍, 온라인 도박, 마약 거래, 무기 밀매, 매춘, 포르노, 온갖 핍박받는 소수자 또는 음성적 커뮤니티가 그런 예입니다.

이런 서비스들은 수요가 높지만 인터넷에서는 서비스되기 나날이 어려워지는 것들입니다. 추적 기술이 발달하며 점점 두려움이 커가지만 수요는 오늘도 내일도 사라지지 않을 것들입니다.

아무래도 운영의 주체가 있는 블록체인들은 이런 서비스들의 처리에 골머리를 안을 겁니다. 어쨌든 우리 생태계로 들어오는게 고맙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일이 될 겁니다. 반대로 음성적인 서비스들 입장에서도 만약 수사기관이 자신들의 정보를 블록체인 운영 주체에게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면 온전히 안전하고 자유롭다고 느끼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진짜 블록체인이 필요한 서비스들은 운영의 주체가 없는 이더리움이나 EOS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일시적으로 양질의 DApp을 만들고 유명한 회사를 파트너로 참여시키고 기존 사용자를 참여시키는 일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중앙화된 주체들이 잘할 겁니다. 허나 시간이 한 두 해 더 지나고 나면 결국 블록체인이 꼭 필요한 서비스들은 대부분 운영의 주체가 없는 블록체인에 둥지를 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안전하고 지역색 없이 보다 국제적인 블록체인이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이더리움이 성능 문제도 있고 해서 많은 DApp들이 갈 길을 잃었습니다. 그 사이를 EOS가 치고 들어왔고 내년에 나올 여러 블록체인들이 각자의 영역을 넓힐 겁니다. 그러나 이더리움은 고작 2014년 12월에 나왔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겨우 말 배우는 수준입니다. 사람들은 당장 이더리움이 뛰어 다니거나 박사 학위를 따기를 바랍니다. 고작 3년 된 실험적 소프트웨어에게 말입니다.

내후년쯤 뒤에는 이더리움이 번듯하게 말도 하고 학교도 다닐 겁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의 DApp은 충분히 구현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커뮤니티도 세계적으로 가장 큽니다. EOS는 물론이고 중앙화된 블록체인들은 이더리움이 아직 제대로 등판하지 못한 2년을 골든 타임으로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전세계 블록체인 진영에서 고른 지지를 얻고 있는(언제나 IT의 바로미터가 되는 북미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이더리움이 시장을 평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획경제 식으로 단시간에 발전시키는건 자본을 투여해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전세계 커뮤니티의 고른 지지와 개발 참여는 자본의 힘을 약화시킵니다.

돈 주고 DApp 개발 시킬 수 있지만 돈이 무한정 있는게 아니면 언젠가는 멈추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블록체인이 끝내 살아남기 위해 가장 힘써야 하는건 견고한 글로벌 커뮤니티입니다.

북미는 애초부터 이더리움의 Co-founder였던 Joseph Lubin이 창업한 Consensys가 뉴욕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이더리움의 텃밭입니다. 현재 EOS 기반 DApp 사용자는 보통 중국 4-50%, 한국 3-40%, 그리고 나머지 국가를 다 합쳐 1-20% 정도 나오는데 지역 확대는 EOS가 반드시 넘어야할 산입니다. 이를 넘지 못하면 결국 EOS도 앞으로 나올 다른 중앙화된 블록체인과 마찬가지로 특정 지역에서만 인기있는 체인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이 산업에 들어와 항상 혼란스러웠던 것이 과연 블록체인이 말하는 ‘탈중앙성’은 소수 주인공들을 위한 명분일 뿐인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 코인을 만드는 것은 소수고 블록체인도 만들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건 이더리움이나 EOS 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지한이나 로저버, 브룩 피어스처럼 개인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된 사람들은 이 시장이 존속하는 한 거의 지는 일이 없는 게임을 하게 될 겁니다. 대형 거래소들 역시 시장의 헤게모니를 움직이는 주체가 된지 오래입니다. 그들에게 과연 ‘탈중앙’은 어떤 의미일까요?

영화에 빗대자면, ‘블록체인 산업’은 빨간 약 먹고 매트릭스를 탈출한 사람들에게 다시 집 지어주며 재벌이 되는 아이러니한 분야가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내년은 중앙화 진영이 탈중앙 진영에게 도박을 제외한 건전한 DApp의 가능성과 아름다운 사용성을 한 수 보여주어 탈중앙쪽 혁신도 자극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디밴드들끼리 모여 자유롭지만 대중성은 없는 노래를 지어 부르던 마을에 갑자기 SM과 YG가 떨어진 상황이 된 겁니다. 마을 원주민들은 혼란스럽지만, 분명 대중성을 배울 것입니다.

다시 컨텐츠가 갑이 되어 모셔가는 시대

국내외의 중앙화된 블록체인들이 제휴팀을 가동하면 굉장히 많은 회사들이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을 하게 될 겁니다. 물론 그 속도는 아무래도 암호화폐 시장 열기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겠지만 다양한 실험이 여러 카테고리에서 일어날 겁니다. 최근에 야놀자가 두나무의 Luniverse 플랫폼 위에서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을 하겠다고 제휴를 맺은 것도 그런 예입니다.

이스라엘 체인인 Orbs는 한국까지 와서 제휴사를 찾고 있습니다. 벌써 Yes24를 비롯해 여러 기업과 지자체가 Orbs 체인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블록체인을 도입하지는 않을테니 블록체인 도입에 관심 있는 소수 기업들을 놓고 체인 간 경쟁이 치열할 겁니다. 어디랑 하기로 했다가 보다 좋은 조건으로 다시 빼앗아 오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겁니다.

스마트폰 초기에 한때 앱스토어가 세계적으로 600개가 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중국에서는 일부 사설 스토어가 살아 남아 성업중이지만 이제는 Google Play와 Apple AppStore가 사실상 시장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이더리움이나 EOS, 그리고 앞서 열거한 중앙화된 블록체인들은 모두 양질의 DApp이 많이 올라와야 의미가 생기는 이른바 ‘플랫폼 블록체인’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앱스토어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아이폰 초기에 신기하고 재밌는 앱을 쓰려고 아이폰을 산 사람이 많습니다. 즉 플랫폼과 컨텐츠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앱을 쓰려고 아이폰을 사고, 아이폰을 산 김에 앱을 씁니다.

물론 블록체인은 스마트폰 같이 고객 접점이라기보다는 아마존 클라우드 같은 백엔드 인프라에 가깝기 때문에 사실 최종 사용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쓰는 서비스가 백엔드에 이더리움을 썼던 Klaytn을 썼던 전혀 알 필요가 없습니다.

블록체인 플랫폼에서는 주로 DApp 개발자가 플랫폼이 주는 경제적 또는 마케팅적 인센티브, 그리고 자기가 구현하려는 서비스 기능을 가장 제대로 제공해 주는 플랫폼이 어디인지, 또한 자기 서비스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사용성을 보장할 수 있는 플랫폼인가에 따라 어느 블록체인을 선택할지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초기에는 많은 블록체인의 제휴팀들이 ‘파트너사의 필요에 따라 블록체인의 기능을 추가해 주겠다’고 제안할 겁니다. 레퍼런스도 만들겸 파트너사의 DApp 개발을 아예 플랫폼이 대신해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벌써 그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장이 이렇게 되면 결국 일반인이 누구나 아는 소비재 회사나 고객을 많이 가진 회사, 또는 양질의 컨텐츠를 많이 가진 회사는 블록체인 플랫폼들에게 ‘유치 1순위’가 될 것입니다. 서로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독점’ 또는 ‘한시적 독점’ 제휴를 요구할 것이고 결국 금새 컨텐츠가 갑이 되어 블록체인을 고르는 입장이 될 겁니다.

컨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이 독과점 상태가 되면 헤게모니는 플랫폼이 쥐지만, 플랫폼이 난립할 때는 컨텐츠가 헤게모니를 쥡니다. 언제나 그래왔고 블록체인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블록체인 문제는 어디에.

지난 한 해 여러 블록체인 활용 사례가 나왔습니다. 가장 자주 언급된 것이 지역화폐일 겁니다. 지난 지방선거 후보들의 단골 공약이 지역 사회에 통용되는 코인 만들겠다는 것이었는데요. 실제 내년부터는 예산에 반영되어 아마도 활발하게 개발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이 사업에는 스타트업부터 대기업은 물론 공기업까지 뛰어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역화폐는 정말 블록체인 없이 못 만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지역 바우처라는 이름으로 스마트폰에 포인트를 충전해 줍니다. 이건 몇년간 블록체인 기반이 아니었지만 잘 돌아갔습니다.

지금 블록체인 기반이라 이야기하는 여러 지역화폐도 실제 동작 원리는 대부분 Off-chain(블록체인에서 거래되는게 아니라 추후 비동기식으로 기록)입니다. 즉 현재의 그리고 내년에 본격화될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는 실은 마케팅 용어에 다름 아닙니다. 블록체인 없이도 중앙화해서 할 수 있고 지금도 잘하고 있으며 블록체인을 넣는다고 특별히 개선이 있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송금은 어떨까요? 블록체인계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들은 사회적 문제가 ‘Unbanked people’ 즉, 아직 은행 계좌가 없어 돈을 주고 받지 못하는 인류가 1/3이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근처의 환전상에서 현찰로 돈을 주고 받기 위해 많게는 30%의 환전수수료를 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오히려 후진국일수록 자금 이동에 선진국 주민보다 많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이른바 ‘Poor tax’라 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블록체인이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여러 블록체인 기반 송금 프로젝트의 꿈입니다. 참 멋지죠. 심지어 아프리카의 ‘Unbanked people’들에게 비트코인 원장을 중계하는 위성을 쏘겠다는 블록체인 회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가능하려면 우선 스마트폰이 있어야 합니다. 요새 저가형 스마트폰 많으니까 아프리카에 보급이 많이 되었다고 가정하죠. 그러면 더 이상 블록체인 기반 송금이 필요할까요? 스마트폰이 있다는 얘기는 당연히 이동통신망이 깔려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냥 WeChat Pay나 Alipay로 송금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블록체인계의 주장은 ‘중앙화보다 안전하다’, ‘중앙화는 부패됐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WeChat Pay나 Alipay가 사용자의 돈을 훔쳐간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13억 중국 인구가 그토록 열성적으로 사용하지는 않겠죠. 길거리 노점상까지 받는게 WeChat Pay인데, 일대일로 전략으로 아프리카에 열심히 손을 뻗치고 있는 중국이 WeChat Pay나 Alipay를 아프리카에서 서비스하지 못하란 법이 없습니다.

Facebook이 Whatsapp 메신저에서의 송금을 위해 개발한다는 Stable coin 역시 아프리카에 스마트폰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제공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즉, 블록체인이 해결하려는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들간의 송금 서비스는 이미 중앙화에서 잘 제공하고 있는 분야고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것입니다.

네트워크나 스마트폰이 필요없는 송금이라면 또 모를까, 그것들이 있어야 하는 전제로 하는 블록체인 기반 송금은 중앙화된 송금 대비 어떠한 잇점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중앙화된 송금 서비스는 자사 사용자끼리 송금 수수료도 무료입니다.

물론 현재의 은행간 국제 송금 프로토콜인 SWIFT보다는 Ripple이 개발한 xCurrent 솔루션 같은 블록체인 기반 국제송금 프로토콜이 훨씬 비용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마는 이건 기관간 거래에 쓰이는 프로토콜입니다. 개인간 송금은 여전히 중앙화쪽이 훨씬 더 많은 답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그런 식으로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반 공인인증서는 ‘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20년 넘게 사용해 온 공인인증서는 그동안 안전하지 않았던 건가요? 마치 앞서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가 중앙화된 지역화폐보다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블록체인 기반 송금이 중앙화된 송금보다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블록체인이 꼭 필요한 곳이 아닌데 적용을 한 것입니다. 그랬기에 사용자는 잘 설득이 안됩니다.

내년 예산을 보니 굉장히 많은 블록체인 국책 과제가 나왔습니다. 지자체도 블록체인 과제를 많이 예산에 올렸습니다. 또 블록체인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 블록체인으로 굳이 풀 필요 없는 문제들이 ‘블록체인 기반’이라는 뭔지 굉장히 어렵고 멋져 보이는 수식어를 달고 개발될 것입니다.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그런 과제가 분명 필요하지만, 블록체인’도’ 풀 수 있는 문제 말고 블록체인’만’ 풀 수 있는 문제에 예산이 가도록 해야 국비가 낭비되지 않습니다.

일년여전 글에서 제가 언급한대로 언젠가는 블록체인이 미들맨을 없애고 직거래하는 시대를 만들어 여러 산업을 전복시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앙화 집단이 바보가 아닌 한 그렇게 쉽게 자기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을 겁니다.

따라서 진짜 블록체인을 생각하는 사람과 회사는 블록체인을 마케팅 용어로 쓸 것이 아니라 전복을 꾀하는 산업에 우뚝 서있는 전통의 강자들을 몰아낼 치밀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도박과 사행성 게임

아래는 EOS의 2018년 12월 23일 기준 실제 동작하는 인기 DApp 순위입니다. 유저수도 많고 24시간 실제 토큰이 왔다갔다한 내역은 압도적으로 도박 DApp이 많습니다. 카테고리의 빨간색이 모두 도박 DAp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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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실제 DApp이 돌기 시작한 TRON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인기있는 대부분의 DApp은 도박입니다. 빨간색은 대놓고 도박이고 갈색은 사행성 DAp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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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같은 시각 이더리움의 DApp들 순위입니다. 이더리움 성능이 너무 떨어져 실시간성이 중요한 도박 DApp은 거의 없습니다. 이게 이더리움이 깨끗해서가 아니라 이더리움에 올리고자 했으나 성능이 떨어져 못올린 도박 DApp들이 상대적으로 빠른 EOS나 Tron을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도박 DApp이 없는 이더리움은 DApp별 24시간 사용자 수가 상대적으로 EOS 대비 1/3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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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더리움 성능이 개선되면, 이더리움의 상위 DApp 순위도 빨간색이나 갈색이 대부분 채울 것입니다. 아직은 아이러니하게도 느려서 깨끗합니다.

비트코인은 DApp이 없지만 최근 24시간동안 가장 입출금이 많은 계좌 Top 25를 보면 그중 최소 10개 이상은 항상 비트코인을 베팅에 사용하는 도박 사이트들이 차지합니다. 결국 주요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트랜젝션은 어김없이 온라인 도박 서비스가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데이터들을 놓고 볼 때 블록체인 킬러 DApp은 도박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암호화폐가 블록체인의 첫번째 히트작이었다면, 두번째는 온라인 도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역화폐나 개인간 송금, P2P 음원 서비스, 농수산물 유통 등은 아직 아닙니다.

STO (증권형 토큰 발행)

이 시장의 많은 분들이 STO(Security Token Offering, 증권형 토큰 발행)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20년까지 10조 달러(10 Trillion dollar)가 된다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딜 가나 그 소리여서 대체 그 수치가 어디서 나온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한 증권형 토큰 플랫폼 회사가 ‘자체 추정’한 내용이 수백개 사이트에 인용되며 마치 STO 시장이 머잖아 그렇게 되는 것처럼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회사 멤버들과 함께 전세계 STO 시장 조사 자료를 뒤졌는데, 제대로 된 추정치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STO에 대해 나온 모든 전망은 근거없는 자료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NDA(비밀유지협약)가 있어 자세히 보여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저는 몇달 전 두바이와 뉴욕의 중심지에 상업 부동산(빌딩)을 STO하는 자료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맨날 백서 수준의 ICO만 보다가 STO라는 신선함과 짓고 있는 건물의 아름다움에 반해 저는 너무 멋진 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증권사에서 온 우리 CFO는 딱 보자마자 “절대 투자하면 안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유는 담보가 전혀 없는, 후순위 채권을 토큰화한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전통 자본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자연스러운 상업 부동산이 STO라는 독특한 자금 조달 수단을 택했을 정도라면, 어딘가 자금 조달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STO 초기에는 그 자금 조달 방식의 생소함으로 인해 좋은 투자 대상일수록 선택을 꺼릴 것이고(전통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쉬운데 굳이 새 방식을 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아마 초기 STO의 대부분은 후순위이거나 무담보, 극도로 위험한 트렌치(=채권 종류)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TO 초기에는 아무런 담보도, 지분도, 권리나 약속도 없던 ICO에 비해서는 훨씬 더 안전해 보일 것이기 때문에 그런 착시 효과로 인해(실제로는 위와 같이 극도의 위험자산일 가능성이 높지만) 판매는 성황리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제가 두바이에 신축하는 아름다운 건물의 전경에 매료된 것처럼 말이죠.

STO가 담보하는 자산이 건전하든 그렇지 않든 사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게 ‘증권’이라는 겁니다. ICO는 아무나 만들고 중개할 수 있었지만 증권은 그렇지 않습니다. 증권중개업 라이센스가 없는 회사가 STO로 나온 토큰을 팔거나, 중개하거나, 소개하거나, (지금 다단계 업자들이 하듯) 리세일 하면 이것은 증권법 위반이 됩니다.

STO는 그 기본 속성이 증권을 중개(Brokerage)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중개 라이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는 증권사의 영역이지 스타트업이나 개인, 팀이나 리셀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비상장주식 분야 1등인 38커뮤니케이션이 20년이 넘도록 ‘삽니다’와 ‘팝니다’ 게시판만 열어 놓고 중간에서 중개를 못하는 이유도 바로 중개 라이센스가 없기 때문입니다.

STO에 대해서는 특히 이 업계에 있는 회사들이 과도한 기대나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STO는 증권이고 증권사가 아니면 취급할 수가 없습니다. 즉 STO 시장이 열린다고 해서(물론 열리기도 쉽지 않겠지만) ICO 때처럼 아무나 막 뛰어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물론 그림이나 부동산 등 그동안 유동화가 어려웠던 자산을 유동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토큰이 갖는 장점이 많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STO는 마치 2017년 초의 ICO나 2015년의 AI와 같이 환상을 갖게 하는 용어입니다. ‘2022년 10조 달러 시장’이라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가 끼면 더욱 그럴싸해집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매력적인 분야임에는 틀림없지만 세가지 생각해 볼 지점이 있습니다.

첫째, 토큰에 펀터멘털이 생기는 점입니다.

담보 재산이나 약속된 배당이 있기 때문에 그런게 없던 유틸리티 토큰보다 상대적으로 토큰 가치를 산정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유틸리티 토큰 때와는 차원이 다른 펀더멘털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높은 변동성을 추구하는 토큰 시장에게는 이게 약일수도, 독일수도 있습니다. 가치의 기준이 생기므로 더 이상 가격이 터무니없이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표시 자산의 건전성 측면입니다.

STO가 엄청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STO라는 낯선 자금 조달 방식을 선택한 투자 물건들은 대체로 전통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즉, 전통 시장의 기관들은 절대 투자하지 않을 자산이나 트렌치를 잘 모르는 개인들에게 판매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브로커들은 STO를 처음 접하는 개인 투자자들을 현혹시켜 마치 작년의 ICO처럼 열심히 팔아제낄 것입니다.

셋째, 발행의 주체와 거래자 모두에게 불편함이 커지는 문제입니다.

STO를 통해 발행된 토큰은 증권사 라이센스를 가진 회사들이 브로커(중개인)로 활동하는 STO 전용 거래소를 통해서만 거래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일반적인 토큰 거래소에서 쉽게 거래하는 것보다는 훨씬 엄격한 비대면 본인확인, 자금 출처 확인 등이 필요할 겁니다.

요컨대 거래 과정이 지금의 토큰 거래보다 훨씬 까다로울 겁니다. 발행회사 역시 다소 간소화되기는 하겠지만 증권신고서에 준하는 내용을 규제당국에 제출해야 할 겁니다. 이는 몹시 거추장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게까지 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좋은 담보 자산일수록 귀찮은 일을 피하려고 할 겁니다.

STO 시장 초기에 부실 채권을 담보로 한 토큰에 투자해 돈을 날린 투자자들은 금새 신중해 질 겁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점차 건전한 채권을 토큰화한 것에 투자하기를 원할 것이고 시장은 합리적이 될 것입니다.

그럼 전통 시장보다 자금 조달이 쉽거나 빠르지도 않고, 오히려 갖출 것은 다 갖춰야 하는 STO를 발행사들이 굳이 선호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양질의 채권이 토큰화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듭니다. 토큰 거래가가 전통 시장 대비 터무니없이 높게 형성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토큰화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그것이 STO입니다. STO는 마치 블록체인과 같습니다. 블록체인을 붙이면 뭐든 좋아 보이고 새로워 보이는 것과 같이, 시들해진 암호화폐에 활력을 불어 넣을 황금카드가 바로 STO로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ICO 때의 착각과 피해를 되풀이하면 안됩니다. STO는 생각보다 쉽지 않고 초기 착시를 넘어 건전하게 대중화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물론 많은 크립토 회사들이 증권 중개 라이센스를 이미 샀거나 땄거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STO 시장이 진짜 커진다면 이미 고객(투자자)을 가진 증권사들이 뛰어들지 않으리란 법이 없습니다.

증권사 출신인 우리 CFO가 토큰 투자 검토를 오래한 저보다 앞서 STO 물건 분석을 훨씬 빠르게 해냈듯이, STO는 전통적인 부동산이나 VC 투자에 가깝기 때문에 전통 자본 시장에 있던 사람이 훨씬 잘할 겁니다.

이에 대해 전원이 증권사 출신인 우리 리서치센터에 물어보니 증권사들은 토큰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STO가 어지간히 커지기 전까지는 건드리지 않을거라고 합니다. 그러면 STO에 대한 대략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STO 시장 초기엔 상대적으로 위험한 실물자산이나 안전한 물건이더라도 위험한 채권이 토큰화될 가능성이 높다.
  2.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 2-3년간은 블록체인 스타트업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팔려면 중개 라이센스가 있어야 할거고 그게 없으면 STO 프로젝트의 설계부터 상장까지 전 과정을 돕는 자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3. 다만 시장이 아주 커지게 되면(아직 STO 시장이 커질지는 불확실하다. STO가 기존 증권에 준하게 발행과 거래가 까다로워지면 발행사들이 발행을 꺼릴 것이기 때문-인터넷 소액공모 제도가 10억원 이상 모집시 증권신고서 제출토록 한 이후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처럼-이다. 유일한 기대감은 상장의 용이성인데, 시장 진입이 유틸리티 토큰 거래소보다 까다로울 것이므로 충분한 거래가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 발행 자문에는 전통 IB가 들어올거고 중개도 기존 증권사들이 들어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전문성을 강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크립토 파이낸스

크립토 파이낸스의 영역에는 크게 OTC(Over the counter, 장외거래), Market Making(시장조성) 또는 Liquidity providing(유동성 공급-결국 같은 말이다-), 운용(Asset Management), 보관 및 자산관리(Custody & Treasury Management), 파생상품 개발/판매 등의 분야가 존재합니다.

운용은 모두가 하고 싶어 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뚜렷한 라이센스가 없기 때문에 주로 지인들 위주의 50인 이하 사모로 암암리에 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법의 모호함으로 인해 정식으로 사모펀드 등록을 한 곳은 없고 그냥 암호화폐로 수신해 운용합니다.) 다만 홍콩 증권당국은 크립토 펀드 운영을 제도권 안에서 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11/1 발표했습니다.

보관 및 자산관리 분야는 기관이 보유한 암호화폐를 안전하게 대신 맡아 보관해줄뿐 아니라 무위험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상품에 투자해 약간의 수익을 내거나 가격변동 노출 위험으로부터 벗어날(Hedging)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시장에 세계적인 자산운용의 공룡인 Fidelity가 뛰어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만 암호화폐 보관의 거추장스러움으로 인해 많은 기관들이 현물보다는 선물이나 ETF를 담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Custody 시장이 생기긴 생기겠으나 고객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파생상품 개발/판매는 비교적 최신에 등장한 분야인데 비트코인 가격에 기반한 장외 파생상품을 설계해 판매하는 해외 하우스가 생겼습니다. 주로 옵션 상품을 설계해 팝니다. 암호화폐 ETF를 White-labeling하여 ETF 상장을 추진하는 회사에 공급하는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하우스도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ETF 운영을 OEM으로 하청주는 구조입니다.

크립토 파이낸스는 기존 금융의 영역을 빼닮아가고 있는데 재밌는건 이 시장에 뛰어드는 기관들과 선수들(주로 증권사 출신인)이 실제 블록체인에는 거의 1도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얼마전 싱가폴 최대 크립토 파이낸스 하우스에서 일하는 트레이더를 만났는데 “하루 12시간 내내 크립토를 들여다보고 있지만 요즘 블록체인쪽 이슈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지낸다”고 했습니다.

물론 운용역은 그러면 안되겠지만 이 친구는 OTC쪽이라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실제 크립토 파이낸스에 뛰어든 금융 선수들에게 이 자산은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크고 전통 자산과 상관관계가 떨어지는 신종 자산군일뿐입니다. 자산의 종류만 바뀌었을뿐 일하는 방법은 똑같습니다.

변동성이 큰만큼 수익률이 높을땐 아주 높지만 아직 전통 시장에서 많은 사람이 안들어갔기 때문에 효율화되지 않은 시장입니다. 따라서 아직 할게 많고 먹을게 많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자극합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막상 들어와서 보면 쉽지는 않습니다. 밖에서 볼 땐 다 할 수 있을거 같지만 들어와 보면 밖에서는 모르던 고충을 알게 되니까요.)

요즘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국내 하우스들도 OTC에 뛰어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해외 하우스들도 국내 OTC 시장에 눈독 들이고 뛰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OTC를 깨끗하게 하는 것과 위험하게 하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한국의 크립토 OTC 시장은 이미 4-5년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개 위험하게 하는 것이었죠. 현금 박치기도 하고 수표도 끊어주었습니다. 거래 상대방이 누구인지, 자금 출처는 어디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크립토를 장외에서 가져야하는 사람은 돈 세탁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나 국내 자산을 해외로 유출하려는 사람들이 그간 국내 OTC의 주요 고객들이었습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체인파트너스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깨끗한 OTC를 해보고자 올 여름 OTC 데스크를 설치했습니다.

그간 우리가 저런 현찰 박치기 같은 요청을 거절한 건만 해도 수천억은 족히 될 것입니다. 반면 양쪽 거래 상대방이 본인 확인과 자금 출처 서류를 제출하는 깨끗한 거래 건수는 아직 국내는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크립토를 사는 기관도 별로 없을뿐더러 관심이 생겼다 해도 나라의 입장이 부정적이어서 구입을 망설입니다. ICO를 한 곳이 많아야 OTC 수요도 커지는데(모금한 토큰을 장외에서 현금화해야 하기 때문에), ICO를 국가가 막아 놓았기 때문에 그쪽 거래 수요도 대단히 적고요.

하물며 장외 파생같은 상품은 크립토를 상시 취급하는 기관(법인고객)이 많아야 수요가 생기는데 우리나라 크립토 파이낸스 하우스들이 건드리기에는 수요가 없습니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결국 나라의 부정적인 입장이 ICO와 거래소를 넘어 이렇듯 최신의 배후산업에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일일 거래량이 많은 미국이나 홍콩, 싱가폴의 OTC 하우스가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고 국내 OTC 하우스들의 경쟁력은 떨어질 겁니다. (심지어 해외 OTC 하우스들이 최근 국내 은행에 계좌를 열어 속속 원화 결제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국내 하우스를 이용해 OTC 거래를 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OTC는 시작일 뿐이고 MM/LP 비즈니스, 운용, 보관, 파생 등 모든 분야에 있어 경험이 적은 국내 회사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어질 겁니다. 금융 허브 도시를 표방하는 부산과 서울에 ‘크립토 금융 샌드박스’를 도입해 이런 분야들을 2년 정도 유예기간을 두고 무엇이든 해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금감원이 주기적인 감독 권한을 갖고 KYC/AML 준수만 철저히 해도 대부분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 겁니다.

크립토 시장이 아직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제한적일 겁니다. 이미 음성적으로 4-5년간 국내에서 행해져 온 비트코인 OTC 거래를 양성화해 돈세탁을 어렵게 하고 세원을 확보하는 순기능도 있을 겁니다.

암호화폐가 원자재에 이어 수십년만에 신종 금융자산으로 인정받을 것은 여러 증거로 인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그 자산의 종주국이 될 기회가 아직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불씨가 꺼져가는데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의 많은 금융맨들이 크립토 파이낸스를 하는 하우스를 설립할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판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글로벌 시장에 회사가 아주 많지는 않기에 아직은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오래 남아있지는 않을 겁니다.

블록체인 경쟁력 갈수록 잃어갈 한국

이 시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암호화폐 거래소가 벌어들인 막대한 수수료를 다시 블록체인 개발에 투자하거나 펀드를 조성해 지갑이나 보안 등 관련 생태계에 투자합니다. 즉 암호화폐 거래소가 이 시장의 왕입니다. 해외에서는 Binance나 Huobi, OKEX가 똑같이 그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업비트나 빗썸이 그렇게 합니다.

그런 환경이 바람직하든 아니든간에 거래소의 기득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EOS BP로 Bitfinex와 Huobi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내 거래소인 코인원도 코인원 노드라는 이름으로 블록체인 노드 운영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거래소를 중심으로 파생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본업의 경쟁력이 중요합니다. 거래소로 시작한 집들은 계속 거래소의 동력이 꺼지지 않아야 다른 사업들을 추진할 추력이 붙습니다. 허나 국내 거래소들은 공격적으로 해외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서 열거한 해외 거래소들이 그토록 한국 시장에 쉽게 진출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심지어 최근 중국계 거래소인 OKEX는 한국에서 행사를 열고 비트코인 기반 파생상품(Perpetual Swap)을 출시한다고 밝혔습니다.(한국 자회사에서는 출시 안하지만 한국인도 OKEX에 가입해 거래 가능)

국내 거래소들은 나라에서 신용 공여를 통한 마진거래를 막아 놓았지만 해외 거래소들은 국내에서 우습게 다들 마진거래를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파생상품을 팔겠다고 국내에서 행사를 열다니요.

비트코인 기반 파생상품은 무턱대고 만들 경우 국내에서 ‘도박장 개설죄’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어 국내 업계는 아무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파생시장을 못만드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라 말을 듣기 위해 안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해외 거래소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국내에서 상품을 알립니다. 이래도 되는걸까요?

국내 거래소들이 아무 것도 못하고 손발 묶여있는 사이 해외 거래소들은 한국 들어와 하고 싶은거 다 합니다. 그럼 결국 투자자들은 마진 거래 있고 파생 거래 있는 해외 거래소를 택할 겁니다. 국내 거래소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하루가 다르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거래소가 무너지면 배후 산업에 투자할 재원이 떨어지므로 블록체인 산업 투자도 줄어듭니다. 그러면 거래소 경쟁력 약화는 전체 블록체인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집니다. 지난 일년간 국내 블록체인 산업 전반에 투자한 주체가 누구인지 조금만 들여다보면 답이 나옵니다. 민간 VC입니까? 아닙니다. 대부분이 거래소와 대형 블록체인 회사들입니다.

국내 거래소도 마진과 파생 거래를 할 수 있게 허용해 주거나 아니면 해외 거래소가 국내에서 마진이나 파생 거래 제공하는 것을 막아야만 합니다. 역차별도 이런 역차별이 있나요? 국내 업체들에게도 자유를 줄게 아니라면 Warning.or.kr 에서 마진이나 파생 거래 기능이 있는 해외 거래소 접속을 모두 차단해야 합니다.

국내 거래소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이 나라를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쩌면 대견한 일이 아닐까요? 물론 돈을 잘 벌어 기득권 때문에 못떠나는 것이겠지만 이런 모호한 규제 속에서 손발이 잘린 채 사업해야 한다면 신생 거래소는 처음부터 외국에서 시작하는게 나을 것입니다.

애국심이 가장 중요한 사업의 동기 중 하나인 저같은 사람도 이렇게 느끼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요. 손 놓고 있다가 나중에 완벽하게 준비 마친 중국계 거래소들에게 우리나라 거래소 라이센스도 하나씩 다 내어줄건가요? 절대로 안될 말입니다.

가격은 상승 저항 있겠지만 여전히 높은 변동성 갖고 움직일 것

작년 말과 올 한해의 학습으로 현재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보다 현명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이상 ICO를 했다고 해서 모은 자금을 다 토큰으로만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OTC를 통해 현금화 해놓거나 해외 파생시장에서 헤징이라도 해놓을 것입니다.

투자자들 역시 작년처럼 영원히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안팔거나 올해처럼 반대로 끝없이 버티는 일은 적어도 한 번 겪었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줄어들 겁니다.

또한 작년까지는 선물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투자자들의 투자 전략이 Long only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선물 시장이 커져 가격이 떨어질 때 이익을 내는 투자자도 생겨 났습니다. 따라서 과거 비트코인이 2만불 갈 때와는 달리 떨어지는 쪽에 베팅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으므로 이들이 가격 상승의 저항 세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과는 다르게 여러 나라에서 법정화폐가 암호화폐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나 법인 모두 신규 자금의 시장 유입이 어렵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제도화가 끝나기까지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동안은 아무래도 작년같은 시장 전반의 급격한 상승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긍정적인 측면

여러 나라에서 제도화가 검토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제도화가 되면 법정화폐 수신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동작할 것이고, 건전한 거래 환경이 점차 정착해 갈 것입니다.

아직은 인기있는 DApp이 도박이나 사행성 게임밖에 없다 하더라도, 이제는 상상이나 백서만이 아니라 지표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점은 작년보다는 상황이 개선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지표도 아직은 인터넷 유저에 비교하면 극도로 초라한 수준이지만(이더리움에서 가장 인기있는 DApp의 24시간 사용자 수가 전세계에서 천명이 안되는 현실) 그래도 새해부터는 중앙화 블록체인들의 활약과 함께 블록체인 서비스 사용자가 분명 비약적으로 증가해 가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앞서 유저와 브랜드를 앞세워 중앙화 블록체인이 지역색을 강하게 띄며 내년의 대세가 될 것이라 점쳤지만 기업들의 한계는 뭉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자기 나라에서는 서로 자기가 최고라 생각하기 때문에 남과 힘을 모을 바에는 자기만의 것을 하나 새로 만든다가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하는 생각입니다.

그게 중앙화 블록체인의 한계이자 탈중앙 블록체인의 전략적 기회가 될 것입니다. 추적의 어려움과 탈지역성, 그리고 특정 기업이나 인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 건강한 거버넌스가 다소 느리더라도 탈중앙 블록체인이 이 세상에서 끝내 승리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요컨대 이 긴 글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야 한다면 다음과 같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운영의 주체가 있는 블록체인이 블록체인 대중화를 앞당기겠지만, 블록체인이 꼭 필요한 문제는 대체로 운영의 주체가 없는 블록체인에서 효과적으로 구현된다.

나가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체인파트너스와 데이빗이오시스폴라리스토크노미아비하인드리서치센터, CP OTC는 내년에도 급변하는 시장에 잘 대응하며 좋은 파트너들과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장의 건강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불어 체인파트너스는 새해 본격적으로 다양한 소비자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사내기업가(EIR, Entreprenuer in Residence) 겸 PO(Product Owner)/PM(Project Manager) 포지션을 신규 채용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추진하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야 신사업을 한 사람이 하나씩 맡아 이끌어가는 소사장 역할을 맡게 됩니다. 전략적 사고와 강인한 실행력을 가진 인재들을 기다립니다. 특히 EIR/PO/PM 포지션은 이 분야 최상위 정보를 접하며 저와 함께 토론하고 사업을 만들어가게 됩니다.

블록체인과 크립토가 좋은건 아직 글로벌 기업이 될 기회가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힘을 모아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회사를 함께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분야는 아직 누구도 걸은 적 없기 때문에 종종 실수가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 일 시작한지 일년 반이 넘었는데 원채 잡음도 많고 소문도, 오해도 참 많습니다. 예전엔 그런게 싫었는데 이제는 그냥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내년에도 실수가 있을 겁니다. 실수한다는건 저희가 계속 도전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계속 지켜봐 주시고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그럼에도 항상 윤리적인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길 빕니다. 새해에도 체인파트너스 멤버 일동, 한국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위해 뛴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12월 27일 표철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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